출세하려면 '최고경영자과정'에 들어가라?
HIT : 799 WRITER : 다이애나 홍 DATE : 2008-06-16 12:14:10
출세하려면 ‘최고경영자과정’ 들어가라?
입력: 2008년 04월 16일 14:25:34
ㆍ‘고급인맥 사교장’ 대학원 특별코스 허와 실

최고경영자(CEO)나 고위관료, 장성급 군인, 언론인, 국회의원, 예술가, 의사, 식당이나 화랑 등의 자영업 경영자, 연예인…. 도무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 학벌, 성별, 연령의 차별은 없지만 돈은 있어야 하고 유명인사라면 더욱 환영 받는다. AMP(Advanced Management Program)라고 불리는 ‘최고경영자 과정’이 바로 그곳이다.

학교나 사회에서 체험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면서 인맥 확장에 사업 아이디어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이 최고경영자과정의 매력이다. 단국대 문화예술 최고과정의 수업 모습. <이상훈 기자>

2008년 현재 서울과 지방의 100여개 대학에서 운영하는 AMP 과정 수강생들은 1만여명 정도. 다른 보통의 대학원처럼 수업 기간도 2년 이상이 아니라 5~6개월로 짧고 그래서 학위도 없다. 주간 과정인 MBA 과정 대신에 야간에 공부하는 EMBA 과정(1년 반~2년 정도)에 비해서도 기간이 짧고, 수업료 역시 그의 10분의 1 수준(EMBA는 6000만원 정도)이다. 게다가 특별히 강의의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다. 최근 경영 트렌드에서 시작해 명사들의 특강까지는 그렇다 쳐도 노래 부르기, 패션쇼까지 ‘문화센터’ 수준의 수업이 진행된다. 그럼에도 AMP에 들어가려는 목적은 뭘까. ‘고급 사교 클럽’에서 ‘출세의 코스’로 소문나 있는 AMP, 정말 그럴까. 겉으로 알려진 것과 다른 무엇이 있는 걸까.

인맥 넓히기와 학벌 세탁도 주목적

경기도 소도시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ㄱ 사장은 올 봄 12번째 AMP에 입학했다. ‘AMP 쇼핑족’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명함에는 이 화려한 학력을 다 적어두었고 동창회에도 꼬박꼬박 참석한다.

“시골 출신에 중학교 2학년 때 무작정 상경해 자수성가했어요. 운이 좋아서인지 외환위기 때도 큰돈을 벌었죠. 그런데 돈만 벌면 뭐합니까. 친구들에게 밥을 사고, 단체에 후원금을 내도 허하더라고요. 그래서 지인의 권유로 경기도에 있는 대학의 AMP에 들어갔죠. 가 보니 평소 만나기 어려운 어르신들이 잔뜩 모여있는 거예요. 다른 자리에서라면 인사도 못 했을 분들이 살갑게 대해 주고 골프도 같이 치고, 갑자기 출세한 것 같더라고요.”

그후 그는 서울 명문대학 AMP 과정을 대부분 섭렵했다. 코스당 600만원 정도의 학비에 학교발전기금(간부들의 경우 수천만~억원대), 방과 후 사교 시간의 술값 등이 부담되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자긍심을 얻어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남의 모 중학교 2년 중퇴가 실제 학벌의 전부이지만 AMP도 동문으로 인정해주는 고려대 AMP 과정을 마쳐 고려대 대학원 출신으로 알려졌고 해마다 동문회비도 꼬박꼬박 낸다.

나이 들면서 ‘굳어진 사고의 혁신’을 위해 AMP에 다녔다는 조근호 대전지검장은 한양대 엔터테인먼트 과정(EEP) 출신. 그곳에서 그는 유머로 어려움을 해소하는 펀 경영과 21세기 트렌드는 물론 청바지 입기, 머리 모양 바꾸기 등을 체험하며 놀랄 만큼 변화했다고 했다. 늘 딱딱한 정장 차림으로만 다니다가 주말에라도 청바지에 분홍빛 셔츠를 입고 머리에 무스를 바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가볍고 부드러워졌다는 것. “이제 재판도 달라져 재판관은 물론 배심원도 설득해야 하는데 사고의 유연화가 매우 도움이 됐고, 강사들을 검찰 혁신 프로그램에 초빙해 호응을 얻었다”고 전했다.

자신과 일에 유익한 정보를 얻고, 오랜만에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강의실에서 책을 펼치면서 신선한 감동을 받는다. 최신 경영지식을 배우고 자신과 엇비슷한 지위에 있는 인맥을 확보하는 것이 회사의 경영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CEO들이 많다. 고급 인맥과 두터운 친분을 맺어두면 사업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다양한 교육 과정, 다채로운 강사들

1975년 고려대학교 경영대에서 처음 문을 연 AMP 과정은 웬만한 대학에는 다 개설되어 있다. 여러 학교를 쇼핑하듯 다니는 이들도 있지만, 저명 인사들을 수강시키기 위해 각 대학은 엄청난 공을 들인다.

독특한 커리큘럼과 특전을 제공해 차별화하는 게 우선이다. 음악·미술·스포츠 등 교양 강의를 실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설 병원과 연계한 건강검진, 배우자 프로그램 등 다양하다. 일부는 와인 강좌를 개설, 수업 후 수강생을 와인바로 이끌기도 한다. 정상급 디자이너와 연계해 직접 정장과 드레스를 입어보는 패션쇼, 70인조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음악홀에서 노래를 불러보는 체험, 두바이나 라스베이거스 등으로 떠나는 수학여행 등….

연세대는 ‘배우자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수강생의 배우자 전용 강좌로 CEO 내조에 필요한 경영관리 및 사회 분야에 관한 강의를 포함하는 것이 특징이다. 골프에 리더십을 접목한 강의가 있는가 하면 미술·시·사진·클래식·오페라 등 예술 전반을 훑기도 한다. 서강대는 ‘리더십 롤플레이’를 앞세운다. 리더십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의 리더로 업그레이드하는 강좌다. 성균관대는 부·웰빙·세계 문화(Wealth·Well-being·World class culture) 3개의 ‘더블유(W)’가 테마다. 생애 설계와 자산 운용, 좋은 펀드 고르는 법, 부동산 펀드 투자전략 등이 ‘부’ 과정에 포함돼 있다. 삼성서울병원과 연계된 웰빙 테마에서는 스포츠와 노화관리, 장수 비결과 각종 질병에 대한 예방과 대처법을 강의한다. 건학 이념인 ‘유교와 연계된 리더십 프로그램’과 ‘21세기 유교적 자본주의’ 등은 성균관대에만 있는 독특한 강좌다.

대학뿐 아니라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최고위 과정’도 인기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월례 조찬특강 ‘메디치21’에는 매달 600명 이상이 몰려 그림과 역사, 문화를 배운다. 4년 전 처음 시작할 땐 100명 안팎이던 것이 6배 늘었다. 이 연구소는 와인·그림·영화·사진을 배우는 ‘CEO&컬처’ 강좌를 시리즈로 만들었다.

AMP의 또 다른 특성은 학자보다는 기업인이나 문화예술인들을 강사로 초청, 체험담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최근 인기 강사로는 이금룡 KR얼라이언스 대표, 하민희 이미지21 대표,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 원장,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전무 등이다. 또 강석진 CEO 컨설팅그룹 회장, 이채욱 GE코리아 회장, 구학서 신세계 부회장, 윤석금 웅진 회장, 제프리 존스 미국 변호사, 장정훈 존슨앤존슨 아·태지역 사장도 인기 강사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도 광운대 AMP 강의 도중 BBK 발언을 해서 ‘BBK 동영상’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2000년 광운대 최고경영자 과정 특강 장면은 지난 대선 때 BBK 동영상으로 불리며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강사나 강의보다 학생 수준이 관건

지난 연말, 고려대 정책대학원 ‘부동산최고경영자 과정(CRO)’이 화제가 됐다. 그 과정의 지도교수가 현재 청와대 수석인 곽승준 교수여서 곽 교수와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에게 얼굴을 알리려는 수강생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스타 수강생’들이 얼마나 많이 모이느냐에 따라 학생 유치가 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1기 수료식을 마친 서울대의 인문학 최고위 과정 ‘아드 폰테스 프로그램’은 출석률이 80%에 달했다. 이철우 롯데쇼핑 사장，김인철 LG생명과학 사장，최영한 국민은행 부행장，이계안 의원 등 38명이 수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의원 시절 고려대 AMP 과정을 수료했다. 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가 학생으로 수강했다는 이유만으로 홍익대 미래디자인 과정은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삼성의 와인 코스 역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학생이어서 출석률이 높다는 후문이다. 현정은 현대상선 회장도 공부에 관심이 많은데 현 회장의 학업에 오히려 남들이 관심을 더 갖는다.

이처럼 현 정부의 실세, 자신에게 필요한 부처의 간부, 유명인 등이 모인다고 하면 학생 모집은 쉽다. 대기업 홍보담당자들의 경우, 주요 언론사 간부들과도 인맥을 쌓고 유명 연예인들과도 친해두는 것이 필요해 언론정보대학원에 다닌다. AMP 과정은 아니고 석사학위도 딸 수 있지만 회사에서 수업료를 내준다는 이점이 있다. 연예인들 중에서는 미모의 중견급 여성들이 대학에서 가장 정성을 들이는 대상이다. 나이가 어린 스타들은 AMP 과정에 들어올 시간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김수미, 김미숙, 박경림, 심혜진, 노현희씨 등이 수료했고 이제 모델, 리포터, 연극배우까지 영역이 넓어졌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목적’에만 눈이 어두운 이들이 가끔 ‘사고’를 치기 때문이다. 여러 AMP에 다니며 도덕적으로 물의를 빚은 사례는 KBS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또 부동산 컨설턴트, 보험업자, 화랑 운영자, 식당 주인 등은 노골적으로 자기 사업을 홍보해 물의를 빚기도 한다.

이처럼 AMP 과정이 많이 개설되는 이유는 대학에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6개월 과정의 수강료가 400만~1000만원임을 감안하면 전체 AMP 시장 규모는 600억~700억원 선으로 추정된다. 수강료를 높게 책정해도 불만이 없으니 학교로선 밑질 게 없는 장사다. 또 학위를 주지 않는 비학위 과정이어서 교육과학기술부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서울대의 경우에도 경영대학이 개설한 정식 AMP 과정 외에 공기업 고급경영자과정(경영대학), 패션산업 최고경영자과정(생활과학대학), 최고산업전략과정(공과대학), 도시·환경고위정책과정(환경대학원) 등 10여개의 AMP 과정을 운영 중이다.

지난달 교육부에 따르면 최고위 과정은 단기 연수와 마찬가지로 대학이 자체 학칙에 의해 자유롭게 개설할 수 있다. 딱히 관련법이나 규제가 없어 현재 수백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학기마다 수십개씩 개설됐다 폐쇄되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AMP 과정을 통해 시장성을 간파한 대학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언론대학원, 정책대학원, 국제대학원 등으로 끊임없이 외연을 넓히며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섰다. 최근에는 부동산, 디지털, 게임 등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분야에는 어김없이 최고위 과정이 개설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 한식당을 경영하는 이복자씨는 “남성들이야 대학, 직장, 군대 등을 통해 인맥을 넓힐 수 있지만 저처럼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에 뛰어든 여성이 인맥을 형성하는 데는 AMP 과정이 가장 좋다”면서 “젊은 시절엔 맞선볼 꿈도 못꾸었던 변호사, 의사, 사장들이 호감을 보이고 그들과 공부는 물론 골프 등으로 우정을 나누는 일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만족해했다. 반면 중소기업 사장 ㅂ씨는 “길어야 4, 5개월 정도 모여 공부하는데 학생회장, 동창회장 등 전 학생의 반을 간부로 만들고 학교발전기금으로 수천만원을 요구해서 기분이 나빴다”며 대학의 장삿속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 과정의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이정훈씨는 “요즘 학생들의 수준과 욕구가 너무 높아져 수업 과목과 강사 선정은 물론, 대부분 오후 6시부터 시작이라 저녁 식단까지 완벽하게 최상급으로 짜느라 학교 측의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며 “이분들은 대부분 각 대학원을 순례하기 때문에 나쁜 인상을 심으면 엄청난 피해를 받는다”고 하소연했다.

〈 유인경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