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앞이 잘 안보이고,

손가락에 힘이 없어 자판을 두드리기가 힘이 듭니다.

어깨는 내려앉는 느낌이고

온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두 다리는 마비가 오는 듯 감각이 없습니다.

온종일 컴퓨터와 마주앉아 생각을 주고 받고,

제 가슴을 다 열어 보였습니다.

마음을 다 빼앗겼기 때문인지 지금은 쓰러질 것만 같습니다.

치쳐 쓰러졌다 말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힘든 상황에 그저 고독만이 나를 안아 줍니다.

한 권의 책을 탈고 하는 순간입니다.

밤인지 낮인지,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르고

그저 배고파서 먹고, 봄 햇살이 얼마나 고운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목이 타 들어가는 갈증을 생수로 달래며, 토해내고 토해내는 글쓰기 작업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았으면, 아마 정신이 약간 나간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멍해졌습니다.

활자가 주는 눈의 피로를 그저 잠시 잠깐 눈을 감아 달래어 주었습니다. 온종일 마우스와 자판을 두들겼던 손목은 작동이 제대로 안되고 아픈 어깨는 그 무게에 눌려 아래로 아래로 내려 옵니다.

나누어 쉬어가며 해도 되겠거늘,

욕심이 화를 부릅니다. 언제까지나 미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마무리한다는 목표가 드디어 마침표를 찍어 주었습니다. 내일은 또 다른 일을 해야 하고,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더 이상 원고에 갇혀 있기 싫어서입니다. 그동안 원고뭉치에 눌려 숨쉬기조차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처럼 힘든 작업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세상에 나오는 책들이 모두 이런 진통으로 태어난다면 작가들은 참 경이롭습니다. 멀고 험한 길은 작가의 글쓰기에도 예외 없습니다.

한 권의 책을 출판사에 넘어가는 순간, 어찌 마음은 더 허전합니까? 완성되면 더 충만할 줄 알았는데...

그동안 밀고 당기고 했던 아련한 기억들이

시린 눈과 아픈 어깨와 힘없이 두드리는 자판의 손가락 끝을 타고 마지막 출간 기획서를 작성하니 눈물이 납니다.

출간 기획서는 작가를 더 고독하게 하는군요.

저자의 순수한 마음을 원고로 그냥 대신하면 안 되는 걸까요? 출간 기획서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저는 이제 한 문장도 쓸 힘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제 영혼이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관객이 아무도 없는 객장에서 혼자 고독하게 한 판 춤사위를 벌렸습니다.